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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to a shadow

솔직해지기, 아쉬움과 속상함에 대하여

by 고이난 2021. 5. 3.

참으로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어제 조금 밤 늦게까지 워크샵을 하고, 관련해서 몇몇 사람들과 한국 시간으로는 늦은 밤, 이곳 시간으로는 이른 아침에 마저 통화를 하기로 하고 침대에 누웠다. 워크샵의 여파 때문에 여러 생각들이 머리에 남아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빨리 자야 내일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계속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터무니없게도 매년 한 번 방영되는 새해 특집 일본 예능 프로그램이 갑자기 생각나서 그 방송을 보았다. 세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면서 웃다가 지쳐 잠에 들었다.

 

꿈의 공간적 배경은 내 방, 꿈의 시간적 배경은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직후였다. 다만 연락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받은 메시지는 나에게 한국에서 지금 어떤 큰 축제가 성대히 방영되고 있다며, 코로나 시대에 힘들었는데 희망을 주는 축제라며 좋아하는 반응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같은 시간대에 그 생방송을 직접 텔레비전으로 시청하지 못함에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답장하기 전에 이런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ㅎㅎ 아까 워크샵 때문에 피곤했을텐데 마저 더 자~ 그럼 나중에 연락해"

 

그 메시지를 받자마자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약속하기로 했던 시간이었고, 한국의 해는 저물어 내 방 창가에 머물었다. 실제로 받은 메시지인줄 알고 알림함을 몇 번이고 확인했는지 모른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시간은 오전 4시 30분. 약 2시간 반 정도 잔 것 같은데 깊게 잠에 들지 않아서 그랬는지 금방 눈이 떠졌으리라. 그런데 너무 심장이 뛰어서 아침 일찍부터 보통 저녁에 먹는 진정효과가 있는 차를 무의식적으로 끓였다.

 

아쉬웠다. 그리고 속상했다. 꿈 속의 그들은 나에게 배려의 의미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혹은 그들 자신이 피곤해서 연락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그리고 그걸 메시지에서 알았더라면, 오히려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참으로 그들과 나의 거리를 느끼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나는 밤을 새서라도 그들의 시간이 가능하다면 이야기를 마저 더 나누고 싶은데, 내가 지금 어떤 바쁜 일을 해야 하든지 그럴텐데. 그리고 그걸 늘 말해왔었는데, 왜 그걸 몰라줄까. 

 

순간 마음 속 죄수가 참으로 오랜만에 나타나 주머니에서 감옥 열쇠 고리를 만지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어떤 열쇠로 할까-. 그 열쇠가 주머니에서 꺼내지기 전에 내가 먼저 글을 써서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유학을 마치자마자 한국에 돌아와서 그들과 함께 다시 활동하고 싶다. 아니, 다시가 아니라 나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결정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보냈다. 한국에 들어오면 자리가 없다고, 충분히 더 경력을 쌓고 돌아오라고. 이왕 미국에 간 김에 너의 꿈을 펼처보이라고. 그들이 내 꿈에 대해서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 그들이 모른다면 그것은 나의 탓이다. 내가 제대로 그들에게 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했거나, 내가 별 이유 없이 미국에 유학을 왔거나.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새롭고 익숙한 것들을 다시 더 배워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과 함께 겪었던 문제들에 함께 맞부딪히기 위해서 유학을 가고 싶어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런 것들에 기여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 배운 것이 아니고 아직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는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한국의 동료들와 함께 활동을 하며, 너무나도 높은 장벽에 부딪힌다. 단순히 미국에 있는 것이 이렇게나 큰 장벽을 마주하게 해야만 한다니. 장벽이 생기는 데에는 갖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한국 전화번호로 전화할 수 없다는 점. 바쁠 때 메시지가 닿지 않는다는 점. 시간이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점. 속깊은 이야기는 모두 한국 와서 하자며 미뤄지고, 시간이 흐르며 잊혀진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의 그 서로에 대한 끌림, 열정, 그리고 함께 바라보는 방향이 사라진다. 그러면서 나의 유학 생활의 의미도 사라진다.

 

 

"아하- 오늘은 이 열쇠가 좋겠군... 어디보자. "나는 그러게 왜 괜히 유학을 와서"라고 적혀있네. 이거야 익숙하지."

 

 

 

내 마음 속 죄수는 기어코 그렇게 열쇠를 꺼냈다. 나를 잠글 열쇠가 있으니 감옥을 만드는 것 즈음은 그에게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그 감옥의 논리는 이러하다. 내가 무슨 목적으로 유학을 왔든, 그거에 너무 기대하지 마. 어쨌든 너가 다른 나라에 있는 이상 그들과 너는 함께 할 수 없어. 외국에 있는 공백기간을 아무리 온라인 워크샵과 보이스톡과 줌통화로 메꾸려 한들, 그건 피상적일 뿐이야. 4-5년 동안 아무 연락하지 않고 지낸 다음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 와서 우리들과 함께 하겠다고?"와 같은 질문을 받을 것 같지? 맞아. 그렇다고 그 4-5년 동안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낸 다음에 한국에 돌아오면 다른 질문을 받을 것 같아? 어차피 같아. 넌 이곳에 온 이상, 그들과 끝난거야. 거긴 너 없이도 잘 돌아가고, 너가 그들의 마음과 삶 속에 있기엔 그들은 너무 바빠. 그러니 그냥 미련갖지 말고 너나 잘해.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유학을 왔다? 그건 너 착각이야. 너가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거 같아? 전문성? 지식? 그걸 가지고 기후위기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뭔가 너가 배운 것으로 해보려고 하는 것도 기만이고 허영심이야. 애초에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대단한 사람도 아닌게. 이번에는 다른 일이 있어서 한국 오는 건 알겠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한국에 얼씬도 하지마. 너 한국에서 하겠다는 그 연구, 결국 한국 올 핑계를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 괴롭히고. 그 사람들, 너 없이도 잘 지내고 무엇보다 바쁘다니까? 그들에 비하면 너는 한가한거야. 너도 바쁘다고 스스로 착각하겠지만. 그러니 이제 그냥 놔줘. 너만 사라지면 돼. 너만, 이 감옥에 갇히면, 서로 편한거야. 

 

 

그렇게 이곳에서 지내는 1년 9개월의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이 감옥에 스스로 갇혀오곤 했다. 그러면서 감옥 문을 잠근 열쇠를 그들 사이 어딘가로 던져보내곤 했다. 최근 나를 가장 많이 가둔 감옥이기도 했던 만큼, 나는 그나마 이렇게 감옥의 논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옥에 다시 갇히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 분명해졌음은 확실하다. 이번 만큼은 다르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번 만큼은 꼭 다를거야. 

 

이른 아침, 그들에게서 약속된 시간에 연락은 오지 않는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인가보다. 바쁘겠지, 그리고 어쩌면 나 없이도 잘하겠지. 내가 필요하지 않으니, 바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머릿 속에 생각나지 않았겠지. 그러나 이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서가 아닌, 철저히 나의 문제이다. 감옥은 나의 문제이다. 오늘 하루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무엇보다도 "혼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해나가기 위해 살아나갈 것이다. 오늘 하루의 끝에, 내사랑 주간일기에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적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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