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Your Life
나와의 시간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나도 그도 무척이나 바빴던 탓이다.
우울하지 않으므로 나와의 시간이 필요없었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한결 안심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내 안에 또다른 나와는 다른, 어떤 한 사람을 품고 싶다고 느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생각은 내 삶에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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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세 가지만 꼽자면 (한국 기준 개봉 순으로) 뷰티풀 마인드, 인셉션, 그리고 컨택트 (클릭 스포 주의) 이다. 모두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삽입곡이 특징이다.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삽입곡은 뷰티풀 마인드의 이 곡이다. Bb-Ebm-Gb-Ab7 의 반복으로 구성된 단순한 모티브 위에 겹겹이 쌓아올린 다양한 레퍼토리.
뷰티풀 마인드는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한 달을 지냈던, 민사고라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주최한 캠프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GLAD라는 영어 캠프였는데, 그곳에서 아마 영어 회화 수업 교재로 이 영화의 대사들을 한/영 번역으로 적어둔 책을 선정했던 듯 하다.
그 때 인생 첫 여자친구가 생겼던 것 같다. 그것도 부모님 감독? 하에서 지내지 않았던 때에.
캠프 수료식 날, 여자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픽업 나온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할머니댁으로 갔던 것을 기억한다.
그 전에 근처에 있는 올림픽공원의 미술관(SOMA)에서 현대미술 작품전을 관람했던 것을 기억한다.
어느 경로로 왔으며, 수고했다고 무엇을 먹었으며, 도착해서는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시를 관람하면서 내내 위에서 언급했던 곡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기억한다. 바로 내가 부모님과 쉽사리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을 마음 속에 꼭 쥐고 어쩔 줄 몰라 당황했던 나의 마음을. 부모님과 같이 지내지 않았을 때, 바로 그 기간 중에 그 친구와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을, 아무리 애쓰려 해도 부모님께는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만의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뿌듯했던 그 복잡미묘한 감정.
그러한 사실, 그로부터 오는 감정, 뷰티풀 마인드 OST, (어떤 작가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현대미술.
너무나도 신비로워 나는 꼭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떠오르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얼음! 상태로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을 만큼 호기로운 마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부모가 100% 모르는 것을 나만의 힘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때 나는 껍질을 깨고 나왔다 [1].
2.
시애틀로 돌아오기 얼마 전, 나는 다시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할머니댁은 그대로였지만, 공원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그대로였던 적이 없었다. 그 얼마 전, 다시 공원을 찾기 전까지는.
늦은 오후, 살며시 공원 안으로 발걸음을 딛는 나는 자연스럽게 뷰티풀 마인드 OST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수 년 전이 흐른 뒤였고, 당연히 전시도 같을리 없었지만, 그 노래만으로 나는 2006년 여름 그 때로 돌아가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비밀"이라는 것을 가져본 그 때. 그것이 주는 나의 온전함과 신비로움.
3.
그 뒤로 나는 "비밀"을 주고받느라 정신없는 청년기를 보냈다. 대학 입학 후엔 이른바 "독대"하는 문화 학과를 휩쓸었다. 독대가 무엇이냐 하면, 그저 친한 사람이든 아니든 술 한 잔 놓고 밑바닥까지의 이야기를 서로 털어놓는 시간이다. 단 둘이서. 묘하게 벽을 허무는 그 쾌감이 당시 독대 문화를 퍼뜨렸던 것일까. 딱히 내가 많은 이들에게 권장한 것도 아니었지만 2011년 스무살의 고인환은 자신이 독대를 하던 상대방이 나보다 더 많은 사람과 독대했다는 것을 자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4.
그리고 그 비밀이 나를 잠식할 때 즈음, 나는 나를 잃었다. 비밀보다도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포장지에 취해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 즈음이다. 나는 겉장식만 화려하고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 즈음이다.
5.
그렇게 헤매기를 15년. 제논의 역설과도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 내가 얻은 답은 "솔직함"이었다. 가리고 또 가려서 궁금하게 만들어야만 내가 빛나고 흥미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 투명한 온실과도 같은 나의 마음 그 자체로 빛나는 것임을 진심으로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나를 포장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여도 충분히 멋진 사람일 수 있음을 "진심으로" 깨닫는 것.
그런 깨달음을 지속하는데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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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나를 "마음의 상태를 회복하는 도구로서" 전용하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쏟는 시간이 나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나와 순간을 공유했다. 찰나의 찰나의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행복감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항상 공유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서로에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이내 모두 공유할 수 있었다.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도,
그러나, 그는 그를 잃지 않았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그로서 존재했다.
내가 내 안의 나를 스스로 꺼내어 살펴보듯이, 그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나를 그에게 펼쳐보일 수 있었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사이에서는 명백한 진실로 남았다.
이 이야기는 내 안에 또다른 나와는 다른, 어떤 한 사람을 품고 싶다고 느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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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르만 헤세,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