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national love
오랜만에 삽질을 했다. 귀국 전 날 한 일이라곤 삽질이다. 호미니 모종삽이니 째그래기들로 작업할 때는 하나도 안 즐거웠는데, 삽을 드니까 모처럼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과거란 무시할 수 없나보다. 광탄면에서 그렇게 삽질을 할 때는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를 들으면 늘 생각나는 그 부대에서는 유독 재밌는 기억만이 살아있다. 집합을 시키지 않으면 눈치보였던 그 시절, 집합시켜놓고 담배를 피며 농담따먹기나 했던 그 시절은 잠깐이나마 아직도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의 유일한 틈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때를 낭만화시키는 싫지만- 그들은 그 나름대로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귀국 전 하루를 보냈다.
멀리 돌아보니, 꼭 남해의 섬둥성이들을 닮았다. 산둥성이라고 원래는 표현하지만, 여기도 거기도 산이 섬이니 섬둥성이라고 해도 괜찮겠지. 그렇지만 최백호 선생님의 "바다, 끝"은 듣지 않았다. 아니, 아껴두었다.
딱 두 군데에서만 그 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 행동에 과분한 무게를 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그런 행동을 하는 "나"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가 더 중요한 것인가 싶었다.
학술적 내용의 책이 아닐거면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쓸 책의 이름은 transnational love가 아닐까 했다. 우리는 외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어도, 그런 상황에서의 사랑에 대한 논의는 지독히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만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더욱이 쓰고 싶은 책. Transnational love.
사실 첫 장부터 포기하는 법에 대해서 써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고 못 사는 누군가와 영영 함께 같이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영원히 갈등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게 zero-sum game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걸 알기엔 아직 덜 겪었을 지도 모른다.
대화의 끝이 기억난다. 결국은 내가 내키는대로 하란다. 나의 인생 최고의 술 친구이신 아버지가 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다. 어쩌면 그래서 그 말이 더 기억났는지도 모른다.
결국 24시간 뒤면 아버지며 어머니며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한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정작 이곳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이 곳을 떠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나는 그렇게 떠나는 나와 부던히도 작별하며 살아간다.
30살이 다가오며 더욱 그렇다. 30살 전후로 이런 삶이 조금은 편안하길, 혹은 편안해질 필요도 없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