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고양아 너는 좋겠다 아무한테나 이렇게 치근덕 거릴 수 있어서 나도 그냥 아주 가끔 아니 종종 누군가한테 치근덕 거리고 싶거든 그리고 쓰다듬 받고 너는 귀여우니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건지 털도 곱구나 어쩐지 누군가의 손에 길러졌을 것만 같아 착각일 수도 있겠어 인간 중심적인 사고일 수도 있겠어 너는 그냥 그 자체로 곱고 예쁜 고양이구나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납치해도 될까 물어보지만 너는 야옹 한 번을 안하는구나 인간들은 고양이에게 말을 걸 때 야옹이라고 하면 그것에 대답하는 것인줄 안대 얼마나 바보같니 사실 고양이와 인간 사이 즉 묘-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인 관계에서도 그렇단다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이든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었다고 착각하는거지 뭇사람들은 그걸 답정너라고 하나봐 답정너는 귀엽고 익살맞을 때를 묘사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상황에서 답정너는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해 참 묘-하지 그치 그래서 말인데 너를 정말로 데려가고 싶지만 어쩐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나를 따라오는 너를 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했지만 나는 내일 이사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단다 하루만 같이 지내보면 어떨까 우리 집은 비록 지금 많은 박스들로 가득하지만 침대만큼은 푹신해 그래서 너를 씻길 필요도 없어 침대가 푹신하니까 내가 대신 씻을게 오늘 하루종일 짐싸느라 땀흘렸거든 너가 꽤나 불쾌할 수도 있어 그리고 같이 유투브나 좀 보다가 푹 자는거야 오늘 내 생일이었지만 너에게 아무것도 더 근사한 것을 약속할 수가 없어서 미안해 나에게도 그다지 근사한 하루는 아니었거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하지만 해야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 한동안은 내가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불만이 있었지만 그게 내 삶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게 결국 나를 외롭게 하는 일일지라도 생각해봐 누군가는 이런 삶 자체를 받아들여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잖아 어쩌면 오늘 하루는 고양아 너가 아닐까 계속 따라오는 너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니 너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