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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고이난 2021. 4. 16. 16:42

그렇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다. 쓰고 싶은 글들도 너무 많다. 몇 개는 그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토닥여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할 수 없으니 내가 스스로를 토닥이는 법을 배웠다. 아니, 배워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가에 앉아 배를 띄웠다. 그의 배도 보인다. 일단 우리는 배를 묶어두었다. 우리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물가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서로 깔깔대며 웃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기가 차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서 자갈밭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왜 하늘은 늘 노을빛 색이 아닐까 원망하게 만드는 하늘이었다. 지는 태양의 햇볕이 우리의 몸을 투과했지만, 등에 느껴지는 감촉은 차가웠다.

 

해는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차가운 감촉이 우리의 마음을 물들였다. 

 

우리는 배를 묶어두었다. 그 배는 곧 떠나야 함을 알고 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밧줄은 잡고 있었지만 놓을 힘이 없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기억들이 스쳐간다. 매 순간이 춤을 춘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순간의 꽃내음과 풀잎 소리를 기억했다. 그것은 야속하게도 지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자갈밭을 때리는 차가운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새소리마저 없었다. 이전 파도 소리는 다음 파도 소리를 잡아먹어 적막으로 만들어버릴 듯 세차게 점점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나는 나에게 되물었다. 잘 할 수 있을까? 절벽 위에 서서 나는 아래를 들여다본다. 그 끝이 잘 보일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라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파도는 점점 나의 발밑으로 향해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배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누워있던 자갈밭은 이내 바닷물로 가득 차 보이지 않았다. 신나게 춤을 추며 발을 구르던 그 튼튼해보였던 바닥은 저 아래로 깊이 가라앉아 버렸다. 이제는 배에서 내릴 수도 없다. 춤을 추는 것이 재밌었다며 다시 한 번 시연해 볼 수 있는 때도 지났다. 응, 재밌었지. 그래서 나는 더 하고 싶은 건데. 평생 그렇게 춤추며 살면 좋을 텐데. 그런데 정말 망망대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마음도, 나의 배가 떠 있는 이곳도.

 

다만 우리는 같은 배에 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의 배를 밀어내어 더 안전한 곳으로 서로를 옮겨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기에 우리의 배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다만 그는 나의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물이 점차 숨을 조여오는 가운데에서도, 이곳에 더 이상 있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되묻는다. 배를 밀 준비가 되었느냐고. 시간을 가지라고. 천천히 하라고. 나는 아까의 춤을 배 위에서 우스꽝스럽게 해보인다. 그러면 아까와 같이 바뀔 거라고. 물도 천천히 다시 내려가서, 우리가 다시 든든하게 딛고 일어설 자갈밭이 보일 거라고. 파도는 고개를 젓는다. 그럴 일은 없어. 우리에게 때는 지났어.

 

한참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며 배 위에 있었다. 주변은 까맣게 있었다. 우리는 이제 위험하다. 애초에 "때"라는 것이 있었느냐고,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내 눈 앞에 어떤 허수아비가 만들어지고, 나는 그걸 무참히 찢어버렸다. 그렇게 반복하며 고개를 흔들고 보니 그 허수아비는 꼭 나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이제는 배를 밀 때야. 우리가 해야만 해. 파도는 우리를 집어 삼킬거야.

 

그의 말은 나의 말과 일치했다. 우리는 나의 마음 속에서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똑같은 힘으로,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서로를 밀어냈다. 그 모습을 서로가 지켜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막 떠난 그 배에 지금 올라타있다. 밖은 춥다. 해는 져버렸다. 이 배가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해류가 닿아 어느 새로운 자갈밭에 닿는다면, 나는 꼭 그 춤을 한 번 더 춰보고 싶다. 그와 함께 추는 것은 아니더라도, 나는 혼자 그렇게 끝까지 외로워보고 싶다. 

 

나는 어쩌면 나의 말에 책임을 질 정도로 그렇게 단단한 사람은 아닌가보다. 아니, 아닌게 확실하다. 

 

해는 곧 뜰 것이다. 나는 일단 배 위에서 잠을 청해야한다. 그리고 일어나 마주하는 해는 어제와 같은 해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이렇게 외치기를 소망한다. I have rendezvous beyond my beloved horizon

 

 

그리고 그 자갈밭에는 한 척의 빈 보트가 있기를 바라며.